통섭’(consilience)이 대세인가?

‘벽 허물기’로 시작되는 통섭, 이 시대에 절실히 요구된다
  
명저 ‘사회 생물학’을 집필한 에드워드 윌슨은 얼마 전 ‘Consilience’을 출간했다. 이 책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석좌교수, 통섭원장)는 고민 끝에 ‘컨실리언스 ’를 ‘통섭’(統攝)으로 번역했다.

이 책이 나온 직후부터 서구와 우리나라는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화두 앞에 던져진 느낌이다. 주지하다시피 통섭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가 있긴 하지만 80년대 들어 복잡계(complex system)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 의해 지식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통섭과 유사한 개념들

복잡계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온 연구로 이는 어느 한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예비 현상으로 주어진 일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하에 연구되는 명제들이다. 최근에 나온 ‘나비효과’라든가, ‘네트워크 형성‘ 등에 관한 연구가 그런 것들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프랑스 철학자들인 쟝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자크 라깡, 자크 데리다 등에 의해 양자, 소립자 등의 물리학 용어를 차용,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종 교배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물리학자 소칼은 ‘지적사기’라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물리이론을 무리하게 이용. 학문 간의 경계만 어지럽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렇듯 학문 간의 영역을 허무는 작업은 비단 오늘의 현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원론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해서 근대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베이컨, 조선시대 사상가 최한기 등에 의해 여러 차례 시도되고 언급되었다.

이는 미국의 유명 경영대학원(MBA)들이 시도하는 학문의 통합에서도 잘 드러난다. 창업과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이런 비즈니스 학교들은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지식의 통합을 통해 시의적절한 판단력 및 가치관을 심어주고 있다. 비록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다소 지적인 부분이 떨어질지라도 통섭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진들도 다양한 학문들 즉, 사회, 심리, 예술, 경제, 경영, 언어 등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통섭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2000년 들어 소위 ‘퓨전’이라 하여 음식, 의류문화 등에서 섞음의 문화가 유행했다. 양식의 한국화라든가, 중식의 서양화 등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는 한 때 전국을 풍미했다. 성산효도대학원의 김덕균 교수는 저서 ‘삭혀먹는 나라 비벼먹는 나라’(지혜문학)에서 퓨전이 원래 우리의 전통문화임을 강조한바 있다. 그런가 하면 이어령 교수는 그의 여러 저술 중에서 한국인의 문화적 특징을 ‘비빔’에서 찾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에서 통합 내지 통섭으로 볼 수 있는 여러 특징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일부 지식인 층에서 담장 허물기 같은 지금의 통섭을 극렬하게 반대했을 따름이다.

정치는 어떤가?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념과 가치에 따라 당을 짓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이념과 무관한 고유의 정치문화가 존재한다. 물론 두 차례 민주화 세력이 권력을 잡는 동안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의 정치 문화는 당선의 윤곽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보수와 중도, 진보가 한데 어우러진 이런 정치 문화는 타 국가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통섭정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당선’이라는 명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통섭이 주는 의미

‘통섭’의 화두는 작년부터 정치, 재계, 학계에 광풍을 몰고 왔다. 행정과 기업경영을 접목시키거나 나노기술과 로봇, 가전, 통신을 융합하는 ‘컨버지드 네트워크’가 차세대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사이버 상에서도 본격적인 웹2.0 시대가 시작되었다. 학계에서도 밥그릇 싸움을 종결하고,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기존의 고정된 지식이 아닌 새 지식과 새 학문을 개척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통섭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다기능을 가진 가전이나 복합기, 휴대폰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쇼핑몰도 복합 쇼핑몰이 대세다. 전문 매장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영역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한 개 혹은 하나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직업도 투 잡, 물건도 원 플러스 원 ,학위도 두 개 이상 취득해야 하고,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지금 인생계획도 두 번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통섭은 대세인가?

그렇다. 통섭이 대세다. 최재천 교수는 이코노믹21 인터뷰에서 단순히 섞거나, 다른 두 개를 화학적으로 융합하는 것이 아닌 발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통섭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은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파도 여럿이 여러 군데를 파야 한다. 통섭의 과정은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개념은 ‘두레’의 정신과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통섭은 시작이 미약하다. 이제 첫 발을 디뎠을 뿐이다. 그럼에도 통섭이 우리의 희망인 것은 우리 민족성이나 김치처럼 우리에게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섭의 정신은 기독교 사상과도 잘 어우러진다. 일부 대형교회의 문제로 전체 기독교가 매도되는 요즘 세태에 이건 너무 중요하다.

통섭은 외국 근로자들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 여남(女男) 평등 그리고 노사, 기타 여러 갈등 해결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의 만능열쇠가 될 수 있다.

by 별내음 | 2007/12/30 18:41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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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통섭 -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책을 빌려보고 있습니다. 각 학문의 연구자들이 발견에 몰두하여 파편적으로 흩어지는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공통 언어로 커뮤니케이션 해서 각 지식간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나는 의도를 담고 있는데요. 글쓴이가 생물학자여서 그런지, 생물학에 관련된 예가 풍부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인간 문화의 금기는 인간 본성이 반영되어서 나타난 모습인지, 아니면 본성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인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특히 흥미롭게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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